“여기 내 사랑이자 내 주인이 왔는데, 이런, 난 언청이가 아닌가.”
많은 독자가 소설에서 시대를 앞서나가는 사유를 발견하기를 바라고 나 역시 그러하지만 때로는 다음과 같은 소설을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시대착오적인 전제에 사지가 묶인 채 그 덫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혁신과 의외의 샛길을 모색하느라 분투하는 소설. 그런 소설들의 분투가 어찌나 빛나는지 나는 때로 작가가 자기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낡은 규칙을 소설에 박아둔 게 아닌지 의심할 때도 있다. 《값비싼 독》은 100년 전에 쓰였으니 낡은 정신이 담겼다 한들 시대착오가 아니라 시대 반영일 테지만 말이다. 어쨌든 《값비싼 독》을 옭아맨 낡은 규칙은 이성애 로맨스다. 속된 말로 못난 여자와 이 구역 최고 인기남의 사랑 이야기. 그러나 소설을 잘 뜯어보면 이야기가 보통 뒤틀려 있는 게 아니다.
주인공 프루 사른은 소위 ‘언청이’라 불리는 구순구개열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 때문에 당시 여성의 통상적인 삶의 형태인 결혼과 출산을 꿈꾸지 못할 뿐 아니라 마녀라는 소문에 시달리고 그것은 곧 화형당할 위기에 처해 있음을 뜻한다. 시대가 정상이라고 정해놓은 모델에서 한참 벗어난 비천한 존재 프루 사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신분이 높은 여자도 “잼 병에 ‘이것은 모과와 사과’라는 글을 적는 정도”로 문맹률이 높은 시대에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점이다. 이 조건은 프루 사른이라는 인물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러나 소설의 설정으로서도 그럴까?
다락방에서 몽상에 빠지고 여느 여자들과 달리 글을 쓰는 여성 인물이라는 설정은 드물지 않다. 그들은 마녀, 물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우울증 환자, 못 말리는 말괄량이로 그려지지만 한편으로는 더없이 매력적이라 언제나 주인공 자리를 꿰찬다. 그렇기에 프루 사른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것에는 큰 감명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죽도록 육체노동을 한다는 것, 웬만한 장정보다 밭일을 훨씬 많이, 그리고 잘한다는 것에는 반했다.
그가 오빠 기디언에게 복종을 맹세하며 강도 높은 노동을 하는 까닭은 ‘언청이’ 수술을 받을 돈을 벌기 위해서다. 수술을 받아 요정처럼 아름다워져 결혼하기위해서고, 결혼에 실패하더라도 여자가 혼자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현대의 인물로 변환하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원하는 외형을 갖기 위해 수술비를 벌려고 땀 흘려 일하는 성실하고 늠름한 건설업 종사자가 그려진다. 프루 사른은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가을걷이 시즌에 사과를 따고, 사과를 저장한 다락방에서 배구공 윌슨에게 말을 거는 척 놀런드(〈캐스트 어웨이〉)처럼 발그레한 얼굴의 사과에게 말을 거는, 자연을 사랑하는 베테랑 농부이자 작가이자 사랑꾼으로 다채로운 개성을 드러내며 운명의 남자에게 성큼성큼 다가간다.
그렇다면 프루 사른의 운명의 남자는 어떤 사람일까. 케스터 우즈이브스라는 어려운 이름의 남자는 마을 여자들이 “도박을 걸 만한 남자”라고 하자 “목숨을 걸 남자”라고 고쳐 말하는, “꽝꽝 언 눈 뭉치처럼 팔근육”이 튀어나온 남자다. 게다가 그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동물권 활동가로 사냥개와 황소를 싸움 붙이는 ‘황소 괴롭히기’ 행사를 멈추기 위해, 자신이 황소 대신 개들과 싸우다 죽을 뻔하는 의인이다.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은 소울메이트다. 또한 두 사람은 문맹의 커플을 위해 각자 한 사람씩 맡아 연애편지를 대필해주는데, 남의 편지를 대필하는 주제에 뻔뻔하게도 사심을 담아서로에 대한 사랑을 늘어놓는 귀여운 이들이기도 하다. 기대하시라, 이 부분, 정말 재밌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해 말하고 싶다. ‘값비싼 독’은 미래의 부귀영화를 위해 현재의 행복과 사랑하는 사람을 버린 기디언 사른이 품은 독, 언젠가 값비싼 대가를 치를 독을 의미한다. 그러나 푸르 사른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그에게 독처럼 느껴졌을지 모르는 구순구개열이 그녀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몰고 갔다. 그는 관습적인 삶을 바랐으나 그의 몸이 방해하고 반대했다. 마지막에 프루 사른은 소원을 성취하게 되지만 그 부분은 소설에서도 우리에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독이라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나를 돕는 아이러니, 그 ‘값진’ 독의 유쾌한 청개구리 짓이 소설에 가득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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