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르소에게 묻는다
마음을 보여줄 수 없어 인간은 슬프다. 내면과 이면에 존재하는 그것들은 말해지지 않으면, 표현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게 된다. 나는 내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지만 타인의 복잡함은 이해할 수 없다는 삶의 아이러니. 이해했다는 오해와 알고 있다는 무지 속에서 인간은 소외되고 배제된다.
엄마가 죽어도 울지 않는 인간이 있다. 집단과 관계 속에서 좀처럼 웃지 않는 인간이 있다. 자신의 행동을 납득되게 설명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 법 앞에서 뉘우치지 않는 인간이 있다. 선고를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 인간이 있다. 가족과 친구, 법과 제도가 버린 죄인. 구속되고 감금당한 채 결국 죽음에 이른 실패자. 비극 속 주인공의 결말은 처참했지만 비극에 눌리지 않은 인물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오늘의 현대인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다. 사람들은 그 눈동자를 마주하지 못한다. 부끄러운 듯 눈을 돌리고 정체불명의 감정에 휩싸여 고개를 푹 숙인다. 나는 인사이드에 있는데, 나는 집단에 속해 있는데, 나는 법과 제도의 보호 속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불친절한 문체와 건조한 문장.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없는 비사회적인 인물. 기분 나쁘고 꺼림직한 사건과 사고. ‘해피’하지 않은 ‘엔딩’. 《이방인》은 80여 년 전에 출간된 소설이다. 이야기는 오래되었고 주인공 뫼르소는 허구의 인물일 뿐이다. 하지만 독자들은 배울 점 하나 없는 건조한 이 책에 열광했고 나쁜 인간 뫼르소를 사랑했다.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은 《이방인》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나’의 이야기로 읽힌다. 읽은 자는 생각에 잠기고 이내 질문하는 마음을 갖는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는 것. 자신의 행동을 납득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 살려고 애쓰지 않는 것. 그게 나쁜가? 분명 유죄인데 죄가 아닌 것 같은 불편함의 정체는 무엇이지? 만약 세상의 법정에 선다면 나는 나를 변호할 수 있을까?’
사실을 말하는 자는 위험하고 진실을 주장하는 자는 불편하다. 웃지 않고 울지 않는 자는 어째서인지 불온하게 느껴진다. 눈물과 웃음만이 인간 됨을 증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인간이 가장 비인간적일 때 사용하는 도구 역시 눈물과 웃음이라는 것을. 지친다. ‘소셜’이라는 공포.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고 뜻 모를 표정을 감지하느라 마음이 상한다. 관계 속에서 분투하며 애쓰지만 어떤 관계 속에서도 편치 않다. 필요 없는 것들을 배우려 노력하고 목적 없이 그저 부지런하다. 가진 것 중에 진정으로 내 취향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초라한 인식의 소유자. 홀로 되는 것은 두렵지만 함께 있는 것은 따분하다. 우리네 삶이 타인의 인정을 통해 나 자신을 구축해나가는 인정 투쟁의 역사지만, 그래서 자기 증명의 늪과 덫에 빠져 매 순간 위선과 허위와 거짓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살지만, 생각해봐야 한다. 누가 내게 증명을 요구했는지.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 내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면서 내가 되려는 서툰 연기자. 나를 보여주기 위해 보여지는 모습을 꾸며내야 하는 나와 무관한 슬픈 초상 하나. 다 관두고 싶다. 정체불명의 거룩한 본질이 아닌 내 실존으로 살고 싶은 단순한 마음. 그게 그리 나쁜 걸까.
아침마다 거울 앞에 선다. 나를 닮았지만 내가 아닌 낯선 이를 노려보는 지지부진한 일상이 또 시작됐다. 어제오늘 그리고 내일, 반복 속에 낡아가는 거울. 이방인이 되고 싶지 않아 이방인을 욕하고 따돌렸던 군중들은 은밀히 그 이름과 얼굴을 마음에 품고 동경했다. 인간들이 원하는 인간이 되려 그토록 노력했지만 사실 정말 되고 싶었던 건 인간들과 저만치 떨어져 표표한 걸음걸이로 걷는 저 이방인이 아니었을까? 속하지 않았으므로 소외될 수 없는 단독자. 지긋지긋한 관계망에서 벗어나고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를 과감히 탈출해 바깥에서 존재하는 나를 닮은 한 사람. 트랙에서 빠져 나와 유유히 스탠드에 앉는 고독한 한 사람.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그래서 있는 모습 그대로 발견되는, 진정한 자기 자신.
뫼르소에게 나는 배웠다. 타인의 인증이나 보증을 필요치 않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삶에 절실하지 않는 자만이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는 것을. 소외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소외될 수도 없지. 타인에게 신경 쓰느라 정작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던, 남의 말을 열심히 듣느라 내면의 소리에 반응할 수 없었던, 나는 반성한다. 희미하게 다짐하며 나 자신에게 부탁해본다.
《이방인》보다 나은 자기계발서를 읽은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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