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같이 둘도 없을 쾌적한 날에는
“이게 다 날씨 때문이야.”
정말 탓할 게 없는 날에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 몸의 컨디션도 나쁘지 않고, 정신적인 피로도 역시 썩 괜찮은 편인 데다가, 신경 쓸 게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꽤 괜찮은 날이어야 하는데 여전히 하나둘 혹은 더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은 힘 빠지는 느낌이 드는 날. 그런 날에는 하다못해 날씨 탓이라도 해야 했다. 날이 지나치게 좋아도 문제였고, 기분 나쁘게 흐릿해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언제나 나의 ‘잘 안 됨’을 설명해줄 타당한 이유이자 내가 조율 가능한 영역 밖에서 한없이 꾸물거리고 있는 악동이기도 했다. 하지만 또 많은 확률로, 그 반대이기도 했다. 몸과 마음이 정성껏 지친 날에도, 먼지 한 점 없어 저멀리 높은 건물까지 보일 것 같은 맑은 날의 빛을 쬐다보면 나도 모르는 힘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 착각으로 더 편히 누워 쉴 때도 있었고, 놋쇠처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가 매일 걷던 길을 다시 걸으며 왜인지 다른 느낌인 것 같다고 능동적으로 나를 속일 때도 있었다. 흐린 데다가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기도 하는 날에는 대체로 나도 함께 떨어지지만, 그럴 수 없는 날에는 바깥의 동태를 살핀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유독 적어 보인다. 거리가 텅텅 빈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되레 힘이 나서는, 지금 꼭 나가서, 아무도 없는 그런 공간을 막 점유한 다음에, 아주 중요한 일들을 해야지, 하고는 막 나가버리기도 한다. 헤드셋을 끼고, 우산을 들고,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거의 아무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어서 가끔은 종종걸음이 된다. 신이 난다. 그러니까 날씨는, 나의 것도 아니면서,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거의 매일 우리 모두를 휘두르고, 같은 모습을 하고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면서,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날마다 다른 의미를 또 부여하게 되고, 어떤 일이 벌어지거나 벌어지지 않게 만드는, 어쩌면 나보다도 힘이 센 나의 요인일지도 모른다. 날씨 덕을 보며 얼렁뚱땅 이루어진 일들과 날씨 때문에 엉켜서 결국 잘려나간 일들을 생각해본다. 기억은 잘 안 난다.
나는 오늘 꽤 따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는 오늘따라 유난히 쌀쌀하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날을 같이 살아내는데 같은 날씨를 전혀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날 조금 아팠고 느렸다. 그날 친구는 빠르고 민첩했다. 기분도 좋았다고 했다. 정확한 일들은 어쩌면 날씨가 없을 때 오고 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다. 어쩌면…….
비가 왔으면 어땠을까? 천둥과 벼락이 칠 정도로 거센 비바람까지 함께였다면? 그 난장판을 뚫고서도 벌어질 일들은 결국 벌어졌을까? 아니면 험악한 날씨를 이길 만한 운명이란 건 결국 없었을까? 나는 이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끝에 다다르면서, 겨우 이런 생각을, 계속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날씨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진짜 날씨. 날씨 말이야.
글자 사이에 숨겨진 마음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 곱디고운 딸을 나이 많은 남자에게 시집 보내는 엄마의 심정이 너무나 비통하지만 이미 결정한 일이거니와 이제 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해서 자꾸만 ‘완벽한 날씨’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는 것인지, 아니면 딸을 출세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는 생각에 정말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던 것인지. 우리는 모른다. 신부는 단장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며 온갖 일들을 해치우거나 미루거나 하는 식으로 무언가를 자꾸만 미룬다. 다가올 서약이 너무나 좋게 떨려서인지, 아니면 뭔가 어긋난 선택인 걸 알고 있지만 미룰 수 있는 게 고작 그 정도의 시간뿐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인지. 따사로운 햇살이 옛 연인으로 하여금 신부에게 갑작스런 마음을 고백하게 만든 것인지, 때때로 불어오는 돌풍에 복수하고 싶었던 것인지.
우리는 전부 모른다. 그저 벌어진 일들 사이에서 무수히 바뀌고 있는 날씨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무언가를 힘없이 취소시키기도 하고, 안 될 것도 되게 만들 만큼 아리송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는, 그 날씨라는 것, 하나.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완벽한 날씨’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특별히 ‘결혼식’을 위한 것이라니, 더더욱. 사실…… 날씨는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 중요한 것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절차일 텐데. 그것을 위한 쾌적한 날씨라니. 그렇지 않은 날씨였다면 이 결혼은 진창이 되거나 다음으로 영영 미뤄지거나 혹은 재미나게 엎어질 수도 있었을 것처럼. 왜인지 그런 말처럼……. 말도안 되는, 완벽하고 쾌적한 날씨라니. 나는 그 무엇 하나도 제대로 성사되지 않은 이 완벽한 날의 이야기를 읽으며 조금은 바랐다. 결혼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위한 완벽한 날씨이기를. 물론 내가 무엇을 바랐는지는 영영 알 수 없다. 이것을 읽고 있을 당신의 날씨를, 나는 알 수 없을 테니까. 당신의 날씨에 따라 나의 표적은 조금씩 이동하고 뒤바뀔 것이니까. 내가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날마다 쪼개어 읽으며, 결말에 다다랐을 때, 바라는 것이 조금씩 바뀌었던 것처럼. 누구의 최선도 아닌, 모두의 불행도 아닌, 무언가 이것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날마다 바뀌던 그 한 가지만을 조금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그것을 위한, 점점 희소해지고 있는, 그래서 우리를 속단하기 쉽게 만들기도 하는, 단 하루의 쾌적한 날씨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