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세 특별호에서 소개할 네 번째 책이자 국내 초역작인 《마마 블랑카의 회고록》은 베네수엘라 최초의 위대한 여성 작가이자 가장 탁월한 라틴아메리카 여성 작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테레사 데 라 파라의 대표작입니다. 일흔다섯 살의 할머니가 눌러쓴 회고록이자 지금은 사라진 보물 같은 낙원으로서의 어린 시절과 베네수엘라 농장 사회의 아름다운 세계를 시적인 문체로 그린 소설인데요, 《마마 블랑카의 회고록》을 읽고 리뷰(에세이)를 써주신 김인숙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누구나 마찬가지로) 어찌나 애틋한지 아무 데서나 꺼내놓고 싶지 않다. 그런데 마마 블랑카가 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님이 품고 있는 유년의 기억을 조심히 들춰내, 잊고 지내던 행복을 느끼시기를, 혹은 과거와 아름답게 화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라며...🧡
Q1. 《마마 블랑카의 회고록》의 줄거리를 짧게 소개해주세요.
A1. 일흔 살이 넘은 베네수엘라 할머니 ‘마마 블랑카’는 열두 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와 우정을 나누며, 리넨 종이 오백여 장에 기록한 자신의 ‘기억의 초상화’를 소녀에게 남긴다. ‘아무에게도 보여주면 안 된다’던(자식들에게까지!) 그 원고는 소녀에 의해 회고록으로 출판된다. 회고록에 담긴 마마 블랑카, 그러니까 ‘블랑카 니에베스’의 삶은 사탕수수 농장에서 시작된다. 여섯 자매 중 셋째였던 그는, 곱슬머리에 집착하며 틈날 때마다 그의 머리를 말아대던 엄마, 바람 잘 날 없던 자매들과의 일상, 자매들을 늘 즐겁게 해주던 ‘사촌 후안초’, 좋은 친구이자 우직한 일꾼이었던 ‘비센테 이’, 클럽이자 극장이었던 사탕수수 제분소, 나무 이파리나 돌멩이 같은 자연의 장난감과 더불어 낙원 같은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그의 가족이 대도시인 카라카스로 이사하면서 그의 삶은 급격히 전복되고 마는데…….
Q2. 《마마 블랑카의 회고록》의 주인공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요?
A2. 마마 블랑카는 외롭게 혼자 지내지 말고 함께 살자는 자식들의 요청을 완강하게 거절해요. 증권투자에 실패하고 복권에 희망을 걸며 살지언정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살아가겠다는 거지요. 당당하고 멋진 할머니이기도 하지만, 행여나 나이가 들어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가진 조심스러운 인물이에요. 그래서일까요? 오래 꾹꾹 눌러써온 ‘내 기억의 초상화’, 그러니까 후에 회고록으로 출간되는 원고를 자식들이 아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소녀에게 넘겨주지요. 시원시원한가 싶다가도 어쩐지 섬세하다 싶은 사람인데요, 그가 쓴 회고록을 쭉 따라 읽어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Q3. 편집자님이 생각하는 마마 블랑카의 매력 포인트를 세 가지만 꼽아주세요.
A3. 첫째, 사교적이고 편견 없는 마마 블랑카의 성격이에요. 허락도 없이 자신의 집에 불쑥 들어온 소녀와 “스펀지케이크나 좀 먹자꾸나!” 하며 친구가 되는 일은 쉽지 않잖아요. 둘째, 예리한 통찰력이라고 할까요? “‘와, 할머니 물건이다!’라고 말하면서 슬며시 웃고 나면, 한 번도 들춰 보지 않고 구석에 처박아둘 것 같은 예감”으로 회고록을 자식이나 손자들이 아닌 소녀에게 넘긴 걸 보면 알 수 있지요. 셋째, 삶을 대하는 남다른 태도입니다. 그는 깨진 꽃병에게 “아이, 가엾어라. 머리가 아프니?” 하고 말을 걸 만큼 삶을 이루는 모든 대상과 호흡할 줄 알았는데요, 자칫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이런 장면도 마마 블랑카의 아름다운 사고와 시적인 진술로 아주 매력적으로 그려진답니다.
Q4. 마마 블랑카의 성격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나 대사를 소개해주세요.
A4. “나처럼 어린 꼬마가 증조할머니뻘 되는 부인과 함께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늘 그랬듯이 사람들은 언제나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다. 70년의 성상(星霜)을 보낸 할머니의 영혼은 풍상에 찌들지 않아 소녀 시절의 생기발랄함, 그리고 이와 더불어 하늘의 은총으로 탐스럽게 익은 결실을 베풀기 위해 자비로 뒤덮인 과일나무의 거룩한 사명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회고록을 넘겨받은 소녀가 마마 블랑카에 대해 저 대신 잘 정리해준 것 같아요.
Q5. '할머니라는 세계'라는 이번 테마와 관련해서, 마마 블랑카를 통해 새롭게 혹은 새삼스레 떠올린 생각이 있으신가요?
A5.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고…… 누구의 인생도 가치 있고 위대하다는 사실요. 노년이 되었을 때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회고할 수 있을까도 오래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Q6. 기존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중에서 마마 블랑카와 닮은 인물이 있나요?
A6. 오래된 곡이지만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할머니〉가 자꾸 입에 맴돌았어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잊혀지나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없던 일이 되나요”……. 사람의 역사란 쉽게 지워지지 않는 점에서 어쩐지 마마 블랑카가 떠올랐어요.
Q7. 좋았던 문장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A7. “서로에게 화내지 않는 사랑이, 그리고 서로 싸우지 않는 우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곱슬머리를 향한 엄마의 빗나간 애착과 독재자 같은 보모와 여섯 자매의 틈바구니…… 그 속에서 깨달은 삶의 진실이어서인지 절실하게 느껴지네요.
Q8. 특히 이런 분께 《마마 블랑카의 회고록》을 추천한다!
A8. 자존감을 잃어가는 분들에게요. 인생을 기억하는 일과 기록하는 일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는 듯해요. 떠올려보면 희미하거나 두려운 기억도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다보면 선명해지고 차분해지니까요. 자기의 이야기를 직접 눌러쓴 마마 블랑카처럼 내 삶의 이야기를 조용히 적다보면(머릿속에서라도요!) 분명 빛나는 순간들이 떠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