흄세레터 특별호에서 소개할 마지막 작품은 비타 색빌웨스트의 《사라진 모든 열정》입니다. 비타 색빌웨스트는 버지니아 울프의 동성 연인이자 소설 《올랜도》의 모델로 알려져 있지만, 당대에는 울프보다 더 인정받는 작가였다지요. 출판사의 대표이기도 했던 버지니아 울프가 《사라진 모든 열정》 출간 후 비타 색빌웨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상에! 얼마나 신나는지! 그물에 정어리가 걸리듯이 주문이 쏟아져"라고 쓴 것을 보면, 출간 당시 작품이 얼마 인기 있었는지 아시겠죠? (그나저나 주문이 '쏟아지다'니, 부러워라...)
흄세레터는 다음 호부터 원래대로, 매주 금요일 오후 2시에 찾아올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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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사라진 모든 열정》의 줄거리를 짧게 소개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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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인도 총독에 영국 수상까지 지낸 슬레인 백작의 부고를 알리며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여섯 자식은 홀로 남은 어머니 ‘슬레인 백작부인’을 누가 모실 것인지 의논하죠. “어머니는 똑똑한 여자가 아니”니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자식들이 알아서 결정해주면 고마워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요.
그런데 웬걸요, 어머니가 뜻밖의 선언을 합니다. 자식들 중 누구와도 함께 살지 않을 것이며, 한적한 동네에 집을(무려 30년 전부터 점찍어둔!) 얻어 하녀 한 명과 조용하게 지낼 거라고요. 슬레인 백작부인은 자식들이 받은 충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자기만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고, 비로소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아닌 자기 자신에 몰두하죠. 결혼 후 처음으로 ‘해야만 하는’ 일이 없게 되자, 묻어두었던 어린 날의 꿈과 욕망이 되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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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2. 《사라진 모든 열정》의 주인공을 소개해주신다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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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 슬레인 백작부인. 여든여덟 살이에요. 정계의 거물이었던 남편의 아내로, 여섯 자식의 어머니로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온 그는 남편의 죽음 이후 비로소 마음대로 살겠노라 결심합니다. 자식들은 패기 넘치는 노모를 낯설어하지만, 원래부터 그는 수동적이거나 순종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어요. 10대 시절, 그러니까 '데버라 슬레인'이 아닌 ‘데버라 리’였을 때도 이름을 바꾸고 남자로 변장한 다음 외국에 나가 자유를 누리겠다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포부를 품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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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 편집자님이 생각하는 슬레인 백작부인의 매력 포인트를 세 가지만 꼽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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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3. 슬레인 백작부인은 ‘백작부인’이라는 지위에 걸맞게 우아하고 차분한 모습을 잃지 않아요. 어떤 상황에도 좀처럼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고 부드럽게 자기 의견을 전달하죠. 그렇지만 결코 다른 사람에게 휘말리지도 않아요. 자신의 신념과 뜻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마지막으로 슬레인 백작부인은 용기 있는 인물이에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새로운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죠.
"혼자 햄프스테드로 가면서 그녀는 자신이 늙었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수년간에 비해 더 젊어진 느낌이었다. 새로운 삶의 단계(비록 마지막 단계지만)의 이런 시작을 열렬히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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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4. 슬레인 백작부인의 성격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나 대사를 소개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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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새집의 집주인이자 슬레인 백작부인의 또래 남성인 '벅트라우트 씨'와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습니다. 슬레인 백작부인이 마음에 들었던 벅트라우트 씨는 나서서 집의 재정비 작업을 감독하고, 슬레인 백작부인이 작업 상태를 확인하러 들를 때마다 꽃을 선물하곤 해요. 그것도 슬레인 백작부인이 들어올 시각에 햇빛이 드는 위치를 계산해 꽃병을 올려두죠. 그렇게 섬세하게 마음을 쓰고도 말로는 '딱히 달리 둘 곳이 없어 거기 뒀다'고 하는데, 슬레인 백작부인은 구태여 아는 체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평소보다 늦게 도착한 어느 날, 꽃병 주변의 물 자국을 보고는 급히 꽃병의 위치를 옮겨뒀을 벅트라우트 씨를 상상하며 즐거워하죠.
슬레인 백작부인 또한 섬세한 사람이기에 그런 섬세함을 놓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요, 다 알면서도 굳이 자신이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슬레인 백작부인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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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5. '할머니라는 세계'라는 이번 테마와 관련해서, 《사라진 모든 열정》을 통해 새롭게 혹은 새삼스레 떠올린 생각이 있으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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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5. 거듭 읽을수록 슬레인 백작부인의 하녀로 나오는 ‘저누’에게 눈길이 갔어요. 슬레인 백작부인만큼 나이가 많은, 이 작품의 또 다른 할머니 캐릭터죠. 저누는 “헛간에서 짚을 깔고 자고,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고, 일을 제대로 못 하면 매를 맞고, 자라면서 형제자매는 만나볼 수도 없는”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그런 저누의 과거사는 작품의 말미에 아주 짧고 담담하게 언급될 뿐이에요. 슬레인 백작부인은 70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한 번도 저누에게 그런 얘기를 물은 적 없음을 깨닫곤 놀라죠.
얼마 전 아흔이 훌쩍 넘은 외증조할머니를 뵙고 왔는데요, 외할머니와 저를 앉혀두고 당신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위안부에 끌려가지 않으려 급히 결혼을 약속한 일, 그래놓고도 집을 떠나기 싫다고 한사코 고집을 부려 1년을 더 집에 머무른 일, 방앗간에서 낳은 첫아이를 품에 안고 홀로 집으로 돌아온 일, 삶이 버거워 언덕에 올라 몸을 던진 일, 고달팠던 시집살이……. 엄청난 이야기에 한 번, 그토록 수다스러운 할머니의 모습이 낯설어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증조할머니는 그날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런 얘기를 꺼내놓았을까요?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감히 제가 헤아릴 수 없는 영역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다만 이런 다짐을 했습니다. 서툴더라도 자꾸자꾸 할머니에 대해 궁금해해야지. 어설프더라도 계속 질문을 던져야지. 궁금해하는 것과 사랑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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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6. 슬레인 백작부인이 증손녀인 ‘데버라’와 만나는 장면을 특히 좋아해요. 데버라는 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겠다는 마음에 공작과 약혼하지만, 이내 자신에게는 결혼보다 음악가라는 꿈이 소중함을 깨닫고 파혼합니다. 자신의 가치관이 틀린 것은 아닐까 의심하는 증손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슬레인 백작부인은 ‘그저 자신의 결심을 누군가 지지해주고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길 바라는구나’ 하고 파악하죠. 그러곤 곧바로 나지막이 말합니다. “아무렴, 네가 옳단다.” 어쩌면 그 자신이 가장 듣고 싶었을 말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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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 특히 이런 분께 《사라진 모든 열정》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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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7. 소중한 것들을 돌볼 여력도 없이 현생에 치여 사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어요. 여유를 즐기며 책을 읽는 것조차 부담이 되는 분들께요. 모순적인가 싶지만, 딱 반나절만이라도 시간을 내서 《사라진 모든 열정》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누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위로와, 다시 힘을 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으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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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8. 《사라진 모든 열정》을 10글자로 홍보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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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간 출간⭐
《사라진 모든 열정》
비타 색빌웨스트 | 정소영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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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5. 할머니라는 세계
예측할 수 없는 삶의 궤적 속에서
돌아보면 언제나 내가 있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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