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쓰메 소세키가 어릴 때 입양 보내졌으며, 자라는 동안 친부모를 조부모로 알았다는 사실을 아셨나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책을 다시 읽어보니 '기요 할멈'과 도련님의 관계가 새롭게 보이더라고요. 그들이 주고받는 사랑은 또 얼마나 애틋하던지요...이 소설이 정의롭고 고지식한 '도련님'의 활약으로만 기억되면 안 된다는 것이 저의 결론😎
아직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기 전이라면,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도련님》을 추천드려요. 원문의 활기를 그대로 살린 정수윤 번역가의 생동감 있는 번역. 아름다운 표지. 저희 세 편집자의 피 땀 눈물까지. 휴머니스트 《도련님》으로 시작해주실 거죠?
Q1. 《도련님》의 줄거리를 짧게 소개해주세요.
A1. 도련님은 말썽만 부리는 사고뭉치라 집안에서 골칫거리로 전락합니다. 나이 든 하녀 '기요 할멈'만이 도련님에게 무한한 애정을 쏟으며, 훌륭한 성품을 발견해주고 북돋워주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형이 집을 팔면서 기요 할멈은 다른 친척 집으로 가고, 이후 도련님은 시골 마을 중학교에 수학 교사로 부임하며 헤어지는데요. 기요 할멈은 언젠가 다시 돌아오면 자신을 데리고 살아달라고 청하고 도련님은 별생각 없이 그러겠노라 답해요. 기요 할멈과 떨어져 시골에 틀어박혀 지내면서야 그간 기요 할멈이 보여준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고, 기요 할멈과 살고 싶다는 마음은 점점 커져갑니다.
Q2. 기요 할멈에 대해 소개해주신다면요?
A2. 언제나 도련님 편! 기요 할멈은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고, 걱정해주고, 욕해줍니다. 도련님과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왠지 상다리 부러지는 밥상을 차려서 함께 먹을 것 같은 그런 느낌도 들고요. 선입견이 아니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무턱대고 쏟아붓는 사랑의 크기가 엄청나요. 감기에는 걸리지 않았는지, 봉변을 당하지는 않을지, 그리고 지나치게 욱하는 성미까지 염려해주죠. 만에 하나의 사태에 대비해 돈까지 챙겨주고요.
Q3. 편집자님이 생각하는 기요 할멈의 매력 포인트를 세 가지만 꼽아주세요.
A3. 기요 할멈은 도련님이 출세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굳게 믿어요. 하루는 도련님이 그래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 같은지 물으니까 그저 “자가용 인력거를 타고 번듯한 대문을 드나들겠지요”라고 답합니다. 도련님은 머쓱하다는 듯 “할멈도 뾰족한 안은 없었던 모양”이라고 말하는데요. 침이 마르도록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용기를 불어넣지만 실제로 어떤 사람이 될지는 생각해보지 않은 지점이 재밌었어요. 더 웃겼던 건 시골로 떠나게 된 도련님이 기요 할멈을 달래기 위해 내년 여름방학에 다시 돌아올 때 선물을 사다 주겠다고 하는 장면이에요. 저는 선물은 됐다, 건강하기만 해라, 이런 말을 기대했는데 갑자기 ‘에치고 댓잎엿’이 먹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이렇게 갑자기 정확한 명칭을 대는 장면, 귀엽지 않나요? 그래도 기요 할멈의 가장 대단한 매력은 도련님을 향한 끝이 없는 사랑이죠. 한 사람이 누군가를 믿어줄 때 그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Q4. 기요 할멈의 성격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나 대사를 소개해주세요.
A4. “사람 눈이라는 게 한번 멀면 무섭다. 기요 할멈은 내가 장차 출세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 나는 그때 딱히 뭐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래도 기요 할멈이 된다, 된다 하니까 뭐가 되긴 되겠구나 싶었다.”
Q5. '할머니라는 세계'라는 이번 테마와 관련해서, 기요 할멈을 통해 새롭게 혹은 새삼스레 떠올린 생각이 있으신가요?
A5. 교사가 되어 시골로 떠나는 도련님을 기요 할멈이 배웅하는 장면인데요. 열차가 출발한 지 꽤 지난 후에 도련님이 돌아보는데, 기요 할멈은 그대로 서서 도련님 쪽을 바라보고 있죠. 불현듯 10여 년 전 여름이 생각났어요. 폭염 경보가 내렸던 날인데 할머니 집에 갈 테니 같이 자자고 전화했었어요. 저는 살가운 손자도 아니었고, 제가 가면 안 그래도 더운 집이 더 덥기만 할 텐데 왜 그랬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어쨌든 한시간이 걸리니까 근처 횡단보도 앞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할머니는 전화를 끊자마자 집에서 나와 그 앞에서 한시간을 기다렸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옆집 살던 다른 할머니에게 들었죠. “영영 헤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도련님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배웅하는 장면과 제가 눈에 들어올 때까지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와서 기다리는 장면. 저는 왜 같은 장면처럼 느껴질까요.
Q6. 기존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중에서 기요 할멈과 닮은 인물이 있나요?
A6. 〈계춘할망〉이요! 윤여정 배우가 할머니 ‘계춘’을 연기했는데요. 김고은 배우가 연기한 '혜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너 원하는 대로 살라.
Q7. 좋았던 문장 하나만 소개해주세요.
A7. “할멈은 내가 욕심이 없고 솔직한 성격이라며 칭찬했지만, 칭찬받은 나보다 칭찬하는 당신이 훨씬 더 훌륭한 인간이다. 기요 할멈이 보고 싶다.”
Q8. 특히 이런 분께 《도련님》을 추천한다!
A8. 사랑의 힘을 믿거나 사랑의 힘을 의심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서로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는 두 사람이 조건 없이 주고받는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사랑으로 무엇이 바뀌는지 잘 알려주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