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 돌아온 당신에게

회사를 잘 다니던 《치즈》의 주인공 라르만스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에게 어떤 모임에 초대받는다. 돈이 많거나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무시받는다는 걸 느끼면서도 꼬박꼬박 모임에 나간다. 그러다가 치즈 사업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듣고 나서, 사업을 위해 실천한 게 아직 없는데도 벌써부터 사장이 된 것처럼 군다.
라르만스가 직장에서 괴롭힘을 받거나 일이 너무 힘들어서 염불 외는 것처럼 퇴사를 생각했다면 새로운 돌파구가 생긴 걸 축하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라르만스가 치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치즈가 인기 있고, 판매는 어떤 방식으로 하면 좋겠다는 등의 시장조사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헛바람이 들어 자신이 사장이 될 사람이고 자신의 부인은 사장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럴듯한 사무실을 만들고 싶어 중고 시장을 뒤져 테이블과 타자기를 마련하는 등 사업병에 장비병까지 걸린 사람 같았다.
부자들과 어울리다가 현실과 동떨어진 꿈을 꾸게 된 라르만스가 나를 답답하게 했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갑작스럽게 회사를 그만두고 치즈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소설은 라르만스의 시점에서 진행되어 가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분명하게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라르만스에 대한 화를 갈무리한 다음, 라르만스의 가족에게 시선을 돌리니 라르만스가 꽤나 괜찮은, 어쩌면 훌륭한 남편이자 아빠이며 동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동안 다닌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선뜻 그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라르만스에게 가정주부라며 무시당하지만, 남편을 설득하거나 계약서를 찬찬히 뜯어보는 모습을 보아 현명한 게 분명한 라르만스의 아내는 화를 내는 대신 낮에는 회사 일을 하고 저녁에는 사업을 하라며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먹는장사는 망할 일이 없어”라며 북돋아주기까지 한다. 의사인 형은 동생에게 정신 차리라고 충고하는 대신 여러 병 중에 신경증을 골라 진단서를 써주어 병가를 낼 수 있게 돕는다. 라르만스는 아내와 형의 걱정을 귀찮게 여기지만, 두사람 다 라르만스가 장사에 소질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고, 라르만스가 커다란 사고를 치지 않도록 적절한 범위 안에서 걱정을 하고 관심을 갖는다.
라르만스가 문제 있는 사람이었으면 《치즈》의 결말은 라르만스의 파산, 가족과의 절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분수에 맞지도 않고 계획적이지도 않은 행동은 파멸을 부른다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그러나 회사를 30년 동안 성실히 다니고, 속으로 약간의 무시는 할지언정 침대에 아내와 나란히 누워 대화하고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남편이었기에, 가끔은 자식의 숙제를 봐주는 아빠였기에 가족들은 라르만스가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라르만스는 멈춰야 할 때를 깨닫고, 가족들이 열어둔 문을 통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에는 라르만스가 질질 끌고 미련을 갖는 게 아니라 바로 멈추는 걸 보고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주식, 코인, 부동산 같은 것의 가격이 오를 때 제때 팔지 못하고 떨어지면, 그 돈이 내 돈이었어야 한다며 분노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라르만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아내와 자식들에게 사랑을 느끼고, 30년 동안 일한 익숙한 직장에서 신선한 설렘을 느끼게 되는 걸 보고 안도했다.
가족들의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라르만스 또한 단호하게 끊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라르만스는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 번아웃이 왔거나 어머니의 죽음에 알게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일 수도 있다. 가족들이 그걸 알고 직접적으로 위로하는 대신에 새로운 무언가를 통해 라르만스가 활기를 되찾기를 소망한 걸 수도 있겠다.
모험을 떠났다가 일상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얼마나 평화로운지, 사랑과 믿음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