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유혹》 미리보기 1

윌킨스 부인은 아버스넛 부인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가 하는 말은 한마디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스넛 부인도 윌킨스 부인의 표정이 상상으로 흥분되는 것을 보고는 말을 멈춘 채 윌킨스 부인을 바라보았다. 윌킨스 부인의 표정은 햇빛을 받은 바다가 한 줄기 바람에 넘실거리듯 찬란했고 가늘게 떨렸다. 이 순간 윌킨스 부인이 파티에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봐주었을 것 같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버스넛 부인이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뭔가를 묻듯 바라보는 바람에 윌킨스 부인은 깜짝 놀랐다. 당연히 일이 되려면 그런 식이어야 했다. 혼자서는, 윌킨스 부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고, 설사 감당할 수 있다 해도 혼자 그곳에 갈 수는 없을 터였다. 그러나 둘이서 함께라면…….

윌킨스 부인이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우리 가서 알아보기나 할까요?”

아버스넛 부인의 눈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알아봐요?”

“네.” 윌킨스 부인이 여전히 누가 들을세라 나지막이 말했다. “여기 앉아서 얼마나 멋질까 상상만 하지 말고 햄프스테드 집에 가서 우리가 몇 년 동안 했고 앞으로도 수년 동안 할 일을 하자고요. 저녁을 준비하고 생선을 굽고 말이에요.” 윌킨스 부인은 자기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에 스스로도 놀라 이마까지 새빨개졌지만 말을 멈출 수 없었다. “사실 끝이 보이지 않아요. 끝이 없어요. 그러니 휴식이 필요해요. 모두를 위해서 끊어줘야 해요. 잠시 떠나서 행복해지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 거예요. 훨씬 나아져서 돌아올 거니까요. 누구에게나 휴가는 필요해요. 안 그래요?”(19∼20쪽)

《4월의 유혹》  미리보기 2

아버스넛 부인과 윌킨스 부인은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러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둘 다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30일 아침 마침내 이탈리아로 떠나게 됐을 때는 출발에 대한 기쁨도 휴가에 대한 기대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우린 너무 잘해왔어요. 지나칠 정도로요.” 그들은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빅토리아역에 도착했고, 윌킨스 부인은 플랫폼을 오르내리며 계속 중얼거렸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는 거예요. 우린 늘 강요당했고, 그래서 더는 진정한 인간이 아니에요. 진정한 인간이라면 우리처럼 늘 착하기만 할 순 없어요. 우리가 지금 바로 이 역에서 출발을 앞두고 꼭 행복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우리가 여태 행복하지 않았던 게 틀림없어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망쳤다는 이유로 우리도 그렇게 돼가고 있잖아요. 우리가 한 일이 도대체 뭔지 알고 싶어요.” 윌킨스 부인이 여윈 손을 불끈 쥐며 아버스넛 부인에게 화가 나서 물어보았다. “우리가 딱 한 번 우리끼리 멀리 가서 좀 쉬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

그날은 비바람 불고, 날씨가 엉망진창이었다. 바다를 건너가는 일은 끔찍했고, 그들은 몹시 아팠다. 그러나 많이 아프고 난 뒤 칼레에 멀쩡하게 도착한 것만으로도 기뻤고, 그제야 비로소 그들이 하려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나면서 처음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윌킨스 부인만 조금 들떴지만, 곧 창백하던 아버스넛 부인의 얼굴에도 홍조가 번졌다. 칼레에서는 윌킨스 부인이 멜러시가 먹고 있지 않은 가운데 가자미를 먹어보고 싶다고 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원기를 되찾았다. 칼레에서 이미 멜러시 생각은 점점 줄어들었고 덜 중요하게 여겨졌다. 프랑스의 짐꾼들 누구도 멜러시를 알지 못했다. 칼레에 있는 공무원 중 그 누구도 멜러시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파리에서는 기차가 늦어져 리옹역에서 토리노선을 잡아타야 했으므로 멜러시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에 이탈리아에 들어서자 영국도, 프레더릭도, 멜러시도, 목사도, 가난한 사람도, 햄프스테드도, 클럽도, 슐브레드도, 지긋지긋하고 짜증 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꿈처럼 아련하게 사라져버렸다.(58~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