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과 아름다운 장소가 주는 마법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이라는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4월의 유혹》을 읽게 되었다. 청탁을 받아서 읽기 시작했지만 두 번 이상 읽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재미있었기 때문에. 4월의 꽃들이 화려하고 찬란하게 만발한 이탈리아 제노바 근처 산 살바토레의 풍광은 극적인 사건 없이도 은근히 나를 끌어당겨 자꾸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다. 나는 책을 빨리 읽어내는 사람도 못 되고, 자꾸만 ‘100년 전의 우리 여자들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몰입을 방해하고 있었는데도.
귀족을 뜻하는 ‘폰(von)’이 붙은 이름, 그리고 영국 여성 작가의 1922년 소설. 이것은 당시 영국 사람이라는 것만으로도 세상 속에서 귀족이고, 남편 곁에서 자유가 없다고 하지만 가정에서는 얼마든지 하인을 부리고 호강을 누릴 수 있는 위치임을 짐작하게 한다. 나는 20세기 초반 어떻게 런던에서 이탈리아 북서부 바닷가에 있는 성까지 갔는지가 궁금했는데, 배와 기차, 특히 마차를 타고 목적지까지 가는 길의 묘사가 호기심을 충족할 만큼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처음 이 여정을 계획한 ‘로티’는 소설을 끌고 가는 인물이다. 따분한 변호사 남편을 둔 지루하고 자유롭지 못한 여자. 로티는 옷값을 아껴 모은 비상금을 털어 4월에 이탈리아의 중세식 성으로 떠나는 것을 꿈꾸게 되고, 그 꿈이 이루어진다.
같이 동행하게 된 ‘로즈’는 스무 살에 결혼해 서른세 살이 됐다. 그 남편 프레더릭은 왕의 정부(情婦)에 대한 회고록을 쓰는 것이 직업이다. 로즈는 “간음을 생활의 방편으로” 사는 남편의 일을 죄악시하고 자신은 종교와 자선 봉사 생활에 빠져 신만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다. 로즈는 장엄하고 화려한 자연의 장관 속에서 마음속 공허함에 압도되어 전보다 더 낙심하게 된다. 그러나 로즈는 로티를 관찰하며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 “이탈리아로 온 순간부터 로티는 더 어른스러워 보였다. 확실히 아주 행복해 보였고, 더할 나위 없이 기뻐 보였다. 행복이 저 정도로 완벽하게 사람을 보호할 수 있다니! 저토록 독보적이고 현명하게 만들 수 있다니!”
재색을 겸비한 상류사회의 젊은 여성 ‘캐럴라인’은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다. 남자들의 구애와 아름답다는 찬사에 질려버린 캐럴라인의 내면은 활기를 잃어 매력이 없어 보인다. 줄곧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아니라면 그녀의 생은 더 지루했을 것이다. “캐럴라인은 자기도 모르게 흥미가 생겨서 로티를 지켜봤다. 너무나 하찮은 일에 그처럼 행복해한다는 게 몹시 대단해 보였다.” 그러나 캐럴라인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과거의 영광이 현재보다 우위에 있는 ‘피셔 부인’은 부유한 동네에 있는 집과 롤스로이스가 주는 안락함보다는 활력이 필요한 인물이다. 나이에 걸맞은 편안함을 추구하지만 비용이 나가는 것은 싫어하는 여자, 자신이 교류했던 유명인의 이름을 들먹이기를 좋아하는 여자. 소설에는 피셔 부인이 11년 전에 죽은 남편을 미끈거리는 마카로니에 비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이런 장면에서 특히 웃음이 나온다. 영국식 유머인가?
이렇듯 《4월의 유혹》은 네 명의 여자가 아름다운 풍광과 향기 속에서 서로를 지켜보며 자신을 발견하고 성장해가는 소설이라고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