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인사드려요. 흄세의 편집자 '랑'입니다. 그간 새로운 시즌을 여는 레터를 보낼 때면 소개하고 싶은 등장인물과 장면들을 한가득 쏟아놓고 조바심 내며 골랐었는데요. 이번에는 특별호를 통해 시즌 5를 먼저 만나보셨으니, 어떤 책이 마음에 들어왔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오늘 레터가 도착할 때쯤에는 벌써 시즌 5를 한두 권쯤 읽으신 분도 계실 것 같고요! (혼자만의 바람은 아니겠죠?)
《불쌍한 캐럴라인》의 표지만 결이 다른 것을 눈치채셨나요? 주인공인 '캐럴라인' 또한 끝까지 일을 놓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등장인물들과 다른데요. 슬픔도 업무 회의를 하면서 극복할 정도예요.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불쌍한 캐럴라인"이라고 말합니다. 캐럴라인이 헛된 일에 목매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연민의 감정부터 조롱까지 뒤섞여 있죠. 캐럴라인이 지니고 있던 열정과 주변 시선 사이의 간극은 크게 벌어져 있지만, 캐럴라인이 품고 있던 '위대함'을 님이라면 세심히 살펴봐주실 거라 믿어요.
“내 성공은 안 빌어주는 거예요?” 캐럴라인이 톡 쏘았다.
“아직 건강만 중요한 나이는 아닌걸요.”
《불쌍한 캐럴라인》 중에서
《도련님》은 익숙한 책이죠? 지금까지는 '도련님'의 좌충우돌 성장기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뒤에서 도련님을 지켜주고 응원해주는 '기요 할멈'의 시선에 집중해본다면 그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장면과 문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실 거예요. 또한,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으셨다고 해도 '언젠가 읽어봐야 할 작가'로 분류해두셨을 것 같은데요! 이번 기회에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영국의 '햄프스테드(Hampstead)'라는 동네를 아시나요? 《노팅 힐》과 《해리 포터》의 도시이자 국내에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살고 있는 곳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4월의 유혹》과 《사라진 모든 열정》에도 '햄프스테드'가 나온답니다! 100여 년 전에 살았던 여성들은 어떤 기쁨과 슬픔을 품은 채 이 거리를 활보했을까요.
《4월의 유혹》의 '윌킨스 부인'에게 햄프스테드는 지루한 일상이자 벗어나고 싶은 '회색 도시'입니다. 햄프스테드라는 단어를 듣고 절로 고개를 숙일 정도죠. 그러니 "등나무와 햇살"이 있는 이탈리아에 끌릴 수밖에요. 윌킨스 부인은 월세를 분담할 다른 여성 세 명을 모아 지중해가 펼쳐진 작은 성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는데요. 그곳에서는 산재한 일을 처리하려고 골머리 앓지 않고,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납니다. 비로소 얻게 되는 건 바로 "행복의 마법"이에요. "우리가 딱 한 번 우리끼리 멀리 가서 좀 쉬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이렇게 말하고 훌쩍 떠날 수 있는 용기! 올여름에 저만 그 용기가 필요한 건 아니겠죠?
반면, 《사라진 모든 열정》의 '슬레인 백작부인'에게 햄프스테드는 노년에 혼자 가서 살고 싶은 곳이었어요. 그 동네에 점찍어둔 집을 30년 동안이나 품고 있을 정도죠.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집을 알아보러 가면서 지난 수년에 비해 더 젊어진 느낌을 받는데요. 그렇게 여든여덟 살의 노인인 슬레인 백작부인은 햄프스테드에서 "새로운 시작을 열렬히 받아"들입니다. 찾고 싶었던 안식도 비로소 얻게 되죠.
"어린 시절 우리 집은 하숙집이었다."
《매거진 흄세》 중에서
김인숙 소설가는 이 문장으로 《마마 블랑카의 회고록》 리뷰를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이 너무 애틋해서 아무 데서나 꺼내고 싶지 않았는데, '마마 블랑카'가 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고 말하죠. 마마 블랑카는 소중한 기억이 있다면 잊지 않기 위해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님도 이 책을 통해, 꼭 어린 시절이 아니더라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다시금 만날 수 있길 바랄게요. 작가인 테레사 데 라 파라는 베네수엘라 최초의 위대한 여성 작가로 꼽히기도 해요. 베네수엘라 작가라니! 이것만으로도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는 애정 듬뿍 담긴 사견을 남기며......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일에 헌신하며, 사랑을 꺼뜨리지 않은 채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평온함 속에서 과거와 아름답게 마주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금요일마다 전해드릴게요. 여름의 끝자락까지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