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이아의 세계
발레이아라는 암캐가 있다. 주인은 소몰이꾼 파비아누로, 개는 평생을 소몰이꾼의 곁에서 보냈다. 발레이아의 임무는 그를 도와 동물들을 인도하는 것이고 부엌의 돌화로 사이, 비토리아 어멈이 비질한 따듯한 바닥이 잠자리이다. 개는 주인의 두 아이와 진흙탕에서 뒹굴며 친구처럼 놀고, 밤이 되면 화롯불 곁에서 졸며 자기 몫의 뼛조각을 확신한다. 솥 안에는 언제나 변변치 않은 음식이 끓고 있지만, 발레이아는 언제나 그 안에 두툼한 고깃덩어리가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파비아누 일가는 발레이아를 가족처럼 여긴다. 개는 가족이 가뭄을 피해 피난을 할 때도 함께였다. 비록 그들이 피난 중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또 다른 가족이었던 앵무새를 먹은 전적이 있었지만, 그때도 그들은 앵무새의 머리와 발, 뼛조각을 개의 몫으로 던져주었다.
그러다 개가 병에 걸린다. 파비아누는 다른 가족이 아플 때처럼 주술로 상처를 치유하려 하지만 소용이 없다. 개는 산 채로 썩어가고 있다. 소몰이꾼은 생각한다. 저 개는 광견병에 걸렸다. 그는 발레이아를 죽이기 위해 총을 든다. 비토리아 어멈은 아이들을 붙잡아 집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에 불안해하며 발레이아에게 생길 나쁜 일을 예감하지만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파비아누는 발레이아에게 총을 겨누고, 탄환은 개의 뒷다리를 관통한다. 개는 파비아누를 피해 도망치지만 어느 순간 온몸이 무너져 내린다. 개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주인을 물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순간의 충동일 뿐이다. 그 개는 주인에게 복종하지 않은 적이 없다. 체념은 익숙하게 발레이아를 덮쳐오고, 오직 이루지 못한 의무만이 마지막까지 개를 괴롭힌다. 발레이아는 따듯한 돌화로 옆 익숙한 잠자리가 아닌, 죽은 뱀이 던져지던 돌무지 옆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주위를 돌던 독수리 떼는 기다렸다는 듯 발레이아의 두 눈을 파먹는다.
파비아누는 생각할 것이다. 그의 삶이 어쩔 수 없는 불행의 연속이었던 것처럼, 개의 죽음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쁜 운명은 그가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크며, 그에게는 대항할 무기가 없다. 소몰이꾼은 저를꼭 닮은 가족 말고는 무엇도 가지지 못했다. 교육을 받지 못해 무지했고, 농장주는 그의 무지를 이용해 배를 불리곤 했다. 그는 생각을 말로 표현할 줄 몰랐으며 타인의 속내를 알아차릴 만큼 눈치나 셈이 빠르지도 못해 매번 상대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파비아누는 스스로를 사람이라기보다 짐승으로 여겼다. 그는 거기에 자부심마저 느꼈다. 짐승으로 살았기에 그 끔찍한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 죽인 자의 삶이 죽임을 당한 존재의 삶보다 결코 낫다고는 할 수 없는 세월이었다. 개에게 주인이 있듯, 소몰이꾼에게도 농장주라는 주인이 있었다. 그는 주인이 부리는 짐승이었고, 쓸모없어지면 버려지는 짐승이었다. 파비아누의 아내, 비토리아 어멈의 최악의 악몽은 아들들이 소몰이꾼이 되는 것이었다. 파비아누는 모진 나날을 견디며 살아갈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지만, 사회에서는 약자에 불과했다. 그는 저와 아내의 마지막 또한 제 손에 죽은 개의 최후와 다르지 않으리라고 여긴다. 아무렇게나 버려진 채 쓸쓸히 죽어가는 것이다. 쓸모없어진 짐승의 끝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었다.
가뭄이, 익숙한 불행이 찾아온다. 조금 가졌던 평온마저 완전히 잃어버리고, 다시 길을 떠나야 할 날이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피난길에 오른 파비아누는 놀랍게도 미래를 낙관한다. 아직 찾지 못했기에 어딘가에 있을 “덜 메마른 곳”과 저보다 똑똑해질 아들들을 꿈꾸고, 이 땅 어딘가에 덜 불행한 삶이 존재하리라 믿는다. 그 믿음은 어쩐지 확신에 가까워서, 발레이아가 화롯불 위의 솥을 바라보며 확신했던, 제 몫의 커다란 고기 뼈를 연상하게 한다. 그것은 매번 실패하는 꿈이었지만 “그 누구도 발레이아의 확신을 앗아 갈 수 없었고 그 어떤 근심도 발레이아의 소박한 꿈을 방해할 수 없었다.”
삶은 끝없이 그와 그들 가족에게서 무언가를 앗아 갔지만, 그것은 매번 있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또다시 길을 나선 파비아누의 믿음을 흔들지는 못했다. 그 믿음만이 불행 앞에 선 가족들의 유일한 희망이며, 또한 유일한 자산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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