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양식은 어쩌다 내게 왔나?
곱창 집에서 파양된 고양이 곱창이를 내가 거주하는 일본 집에 데려갔다. 곱창이와는 내가 잠시 서울에 머물며 곱창 집에서 아르바이트했을 때 만난 사이였는데, 인간들 사이의 고용, 피고용 관계까지 알 리가 없는 녀석은 나를 엄마로 알고 있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고양이의 한 줌 세계관을 상당 부분 조성했다는 책임감에 고양이들의 습성과는 너무 먼 이민이라는 대모험을 감행했다. 그때만 해도 곱창이는 두 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았다. 대모험을 끝낸 뒤 만성중이염 치료를 받기 위해 동물 병원에 들렀다. 처방해준 약이 즉시 효과를 보여 수의사에게 무한한 존경과 신뢰를 품었는데 그 순간 수의사는 곱창이 몸집이 나이에 비해 너무 작다며 혀를 찼다. 수의사는 영국의 한 과학자가 제시한 성장곡선을 손끝으로 그리며 곱창이는 안정된 환경을 만날 때까지 자신의 성장을 억제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가 손끝으로 그린 그래프는 대충 이런 모양으로 보였다.
이 조그만 놈이 자기 안의 에너지를 꽉 붙잡고 살아갈 만한 환경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니 뭉클해졌다. 파양과 탈주를 반복하며 곱창이는 긴 성장 휴지기를 가졌다. 눈물을 참으려니 콧물이 흘렀고 나는 수의사가 권하는 몇 가지 보험 중 가장 싼 상품을 골라 계약했다. 그때 수의사가 성장을 돕는 특별한 사료라며 고양이용 ‘신들의 양식(해산물 맛)’을 추천했다. 일반 사료에 비해 그다지 비싸지 않은 가격표를 보고 수의사의 진정성에 혀를 내둘렀다. 중이염도 바로 낫게 해준 분 아닌가.
사실 전반적인 일본의 과학기술 수준이 한국과 비교해 얼마나 높은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핵 폐기 오염수를 깨끗하게 정제해 산뜻하고 깔끔하게 방류 처리하는 것쯤은 한국의 최고 존엄이 앞장서 보증해주고 있을 정도니, 나처럼 무식한 문과 나부랭이가 말을 얹을 일이랴. 애완동물 산업 기술 역시 경이롭다. 일본 애완동물 산업의 선진성은 전 세계 고양이들이 열광하는 액상형 간식만 봐도 명확하다. 수의사는 무료로 샘플을 배포 중이라며 친절하게 내게 ‘신들의 양식’을 안겨주었다. 나는 “정말요?”를 남발하며 덥석 받아 왔다.
신들의 양식은 놀라운 효능을 보였다. 몸길이 3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던 곱창이는 한 달 만에 50센티미터가 넘었다. 몸통에 귀를 대면 통통, 하는 소리를 내던 심장박동이 퉁퉁퉁, 하는 육중한 소리로 바뀌었다. 곱창이가 드디어 성장 폭발기를 맞았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사료가 없었기에 나는 동물병원에 들렀다. 1년분 사료를 사면 할인해준다는 말에 반색하며 병원 창고에 쌓여 있던 2년분 사료를 대량으로 구입했다.
문제는 그 직후였다. 앙증맞던 곱창이 이빨이 슬슬 무서워 보이기 시작했다. 성장은 도저히 멈출 기색이 없었다. 이 신들의 양식은 적정선이란 걸 모르는 듯했고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무럭무럭 튼튼하게 자라는 수준을 뛰어넘어 곱창이는 고양이라기보단 치타처럼 보이더니 얼마 후엔 아예 표범이나 재규어처럼 커졌다. 방 안에서 평소처럼 뛰거나 간식을 내놓으라고 울기 시작하면 동네가 흔들렸다. 기분 좋을 때 내는 그릉그릉 소리도 지진이 난 것처럼 위협적인 시그널로 변모했다. 동네에선 동물원 맹수가 탈출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급하게 사료를 바꾸려고 했지만 곱창이는 더욱 탐식했고 불안증과 극심한 빈혈증을 보였다. 아무래도 사료를 중단할 수 없었다. 동물병원은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결국 아래층 사람에게 고발당했다. 마취총을 든 동물원 사육사가 한순간 자위대원으로 보이는 바람에 나는 일본의 평화 헌법이 유지되어야 함을 실감했다. 사육사에게 이끌려 나는 곱창이를 끌어안고 현관을 나섰다. 곱창이의 경이로운 몸집이 사람들 앞에 드러났다. 나는 번쩍이는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눈을 한번 찡그린 뒤 재규어를 방 안에서 키운 한국인으로 야후 뉴스 메인을 장식했다. 몸집만 클 뿐 내게는 영원히 아기 고양이였지만 남들 눈엔 60킬로그램이 넘는 맹수였다. 하품할 때 보이는 송곳니와 빨래판 같은 입천장, (내 힘으론 도저히 깎을 수 없었던) 스무 개의 발톱은 후크 선장의 갈고리처럼 보였을 터다. 사람들이 경악하는 것도 이해는 했다. 우리는 단숨에 공공의 적이 되었다. 사료를 몽땅 챙겨 들고 동물원 차량에 실려 교외로 이동하면서 창밖으로 내다보니 동물병원은 간판이 아예 사라져 있었다. 아니? 저들은 도대체, 왜, 어쩌다 이런 걸 나한테 떠안긴 거지?
“이런, 도쿄 전력 같은 놈들!” 동물원 사자 우리 속에 갇힌 곱창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나도 같이 우리에 들어갔다. 며칠 대기하던 중 삼색 고양이를 마스코트로 삼고 있는 택배 회사 미케네코에서 곱창이를 데려가겠다고 제안해왔다. 단 곱창이는 치즈 색깔 고양이라 카오스 느낌으로 염색을 시켜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온몸에 묻은 염색약을 핥아먹다 죽는 것은 아닐까, 잠시 고민했지만 지금 곱창이의 취향과 의향, 평화롭고 건강하게 지속 가능한 삶을 점검할 여유 따위 없었다. 결과적으로 곱창이는 미케네코에게 염색만 당하고 버려졌다. 홍보용 팝업 스토어에서 나란히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온순한 대형 고양이를 원했던 미케네코는 피부가 가려워 발버둥 치는 곱창이의 이빨을 뽑고 입마개를 씌웠다. 반쯤 마취를 시키자 곱창이는 불쌍하게도 풀린 눈으로 줄곧 야옹거렸는데 귀 염증이 재발해 고름이 흐르는 바람에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곧장 곱창이를 처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엔 신소재 성장 및 회복 연구소에서 곱창이를 데려가겠다는 소식이 들렸다. 야후 뉴스에 실린 곱창이는 발톱을 모조리 뽑힌 듯 피투성이 발로 버둥거리고 있었다. 남들에겐 흉폭한 야수로 보였지만 나는 곱창이의 젖은 얼굴을 알아보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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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에 남은 신들의 양식을 모두 먹어치운 것은 이 사태를 책임질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이 신들의 양식은 인간이든 동물이든 본래는 성장을 멈춘 성체에는 효과가 없다지만 실은 내겐 오래 숨겨온 유전적 비밀이 있었다. 우리 집안에는 대대로 죽을 때까지 근소하게 성장을 계속하는 희귀 유전병이 있었다. 종종 “네 키가 이렇게 컸었냐”라는 지인들의 말을 들을 때 나는 “오랜만에 봐서 더 커 보이는 거”라고 상대방의 착시인 양 받아치곤 했지만 실은 ‘성장호르몬 지속 분비증’ 때문이었다. 신들의 양식을 먹어치우며 나는 거인족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미리 알아둔 ‘헤라클레오포르비아 5 도쿄 신재생 연구소’는 내가 사는 곳과 멀지 않았다. 역에서 내려 연구소 부지로 걸어가는 동안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걸어가는 도중에 주변 건물들이 갈수록 작아졌고 옷은 북북 찢어졌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곧장 연구소에 도착했고 나는 주차장에서 이젠 호랑이만큼 커진 곱창이를 우리로 이동시키려 애를 먹고 있던 대형 트럭 앞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곱창아!” 나는 울면서 달려가 곱창이를 끌어안았다. 집사와 고양이가 눈물의 상봉을 했을 뿐인데 주변 건물이 부들부들 흔들렸다. 키가 12미터쯤 되는 벌거벗은 여자가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고양이를 안고 울부짖는 것을 주시하던 연구원들은 수의사에게 받은 마취총을 거머쥐었다. 코끼리만 한 고양이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거인녀(나)의 품에 안겨 안심하자 연구소는 그 자리에서 거인녀를 조수로 쓰기로 결정했다. 연구소는 거인녀와 고양이를 연구소 부지 창고로 유도했다. 곱창이 귀에서 흐른 고름과 내 콧물이 함께 섞여 땅에 떨어졌다. 그 자리엔 작고 냄새나는 연못이 하나 생겨났다. 연구소가 전달해준 영상 속에서 어쩌다 집안의 비밀을 숨기지 못했냐는 가족, 친지들의 지탄과 함께 연을 끊겠다는 선언을 들었다. 나는 쓸쓸하게 곱창이와 함께 연구소에 머물며 매일 채혈을 당했다. 그 대가로 어디선가 상하기 시작한 해산물들이 산더미처럼 내 앞에 쏟아졌는데 분명히 갇혀서 굶어 죽을 줄로만 알았더니 이게 웬일, 감사한 마음으로 구워 먹었고 식후에는 반드시 추가 채혈을 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하는 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 미디어를 통해 내겐 미래가 없다는 확정을 내리고 있었다. 각종 분쟁과 다툼 속에서 화해를 모르던 전 세계 인간들은 내 문제에 관해선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나를제외한 인간들은 모두 소인이고 다수이며 대부분이고 모두이기 때문이었다. 예외인 거인녀를 제거하는 데엔 한목소리로 대동단결하기 쉬웠다. 그즈음 검찰의 먼지 털기식 압수 수색으로 클라우드에 올려두었던 내 미발표 원고들과 일기가 모두 공개되어 심한 망신을 당했다. 세상을 향한 울분과 환멸로 뒤범벅된 글이었다. 그저 중위 수준 일상을 욕망하다 그마저 너무 욕심부린 것이 아닌가 싶어 괴로워하던 조막만 한 속물성은 SNS에도 드러내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는데 다 소용없었다. 뇌수까지 단번에 공개된 것처럼 수치스러웠다. 타락한 권력층을 욕하는 투박한 신념들로 가득 찬 문장들도 교정을 거치지 않은 비문 그대로 공개됐다. 거인녀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게다가 문장력은 얼마나 형편없는지) 모두가 알게 됐다.
나는 작은 무인도 같은 곳에 보내주면 곱창이와 조용히 살겠다고 연구소에 사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침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고 한국의 반민족 극우 세력과 이들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일본의 재무장 강경우익 세력들은 괴물을 처단해 공동의 재난을 극복하자며 국제 공조를 외쳤다. 한편 거인녀의 특수한 유전자를 보다 상세히 조사해서 인류의 임상의학 진보에 기여하자는 구 우생학자들이 나섰는데 그들의 조상은 생체 거인 실험 결과를 반영한 논문으로 제약 회사를 설립해 큰돈을 번 사람들이었다. 이런 이면의 일들을 알리고 생존을 보장받고 싶었지만 사람들은 내 말을 듣기도 전에 거인녀를 이미 경멸하고 혐오하고 있었다.
고작 하나뿐인 예외적인 존재가 악의를 품으면 어떤 위협이 벌어질지 조악한 CG와 함께 구현한 예상 시나리오 영상이 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회 수가 수천만인 것이 이상했다. 아무래도 바이럴 광고 회사에 상당한 세금이 흘러간 모양이었다. 영상 속, 머리를 풀어헤친 나체의 추한 여성이 특촬 전대물에 나오는 괴물처럼 도시를 밟고 다니며 악을 썼다. 그 장면은 내가 봐도 꽤 끔찍했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효과적으로 위협적일 거였다. 한국의 보수 언론들은 연일 거인녀가 소비하는 1년치 식량이 서울시 학교급식 1년분과 맞먹는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모 시장의 염원이었던 무상급식 철회 선언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나는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내가 가진 막강한 힘으로 전보다 더 노예처럼 일하겠다고 인터뷰를 했는데 보수 언론들은 중장비 기사 노동자들이 반대한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반민족 세력들에 시달리던 민중들은 나를 향해 이참에 그 육중한 몸으로 나쁜 권력자들을 죽이고 세상을 뒤집으라고 외쳤다. 지치고 힘든 민중들의 요구를 들으며 나는 슬프고 외롭고 무력했다.
신들의 양식 덕분에 더욱 확실히 알게 된 인간 부류가 있다. 상상력도 책임감 없으면서 너무 많은 권한을 가진 편협한 인간들, 선거를 위해 이간질 구호를 만드는 이들과 이간질 구호를 위해 선거를 치르는 이들, 철도나 소총, 지리학이 안중에 없는 코뿔소처럼 경제 현실이나 지형적 요구나 과학적 방편이 안중에 없는 소인들이 있었다. 여론조사 지표와 득표수에만 간절한 투표의 화신이 누군가를 짓밟을수록 수치가 상승하는 괴물 같은 현실이 있었다. 모든 인간이 만장일치로 투표한다고 해도 몰아낼 수 없는 법칙과 도덕이 있음을 전혀 개의치 않는 작은 괴물들. 피와 재앙을 불러오는 소인들의 세계에 모두가 갇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커튼으로 속옷도 만들어주지 않는 연구원들의 처참한 성 인지 감수성 부족을 욕하며 나는 수치심과 외로움, 추위를 견뎠다. 오직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 얼굴을 들었다. 썩어가는 쓰레기가 만들어낸 악취와 폐허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무책임한 과학자들의 우연한 족보와 은밀하게 예외를 숨겨왔던 우리 집안의 비밀이 만나 폭발했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테지만 새로운 인간종이 나타났다. 사람들의 찡그린 얼굴 속 혐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울면서 확신했다. 새로운 인간종은 소인들보다 압도적이고 막강한 존재다. 같은 처지의 존재라곤 귀에서 고름이 흐르는 거대 고양이뿐이지만, 저 철창은 마음만 먹으면 그저 이쑤시개처럼 똑 부러질 것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인간종들 사이에 안이한 화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자기들만의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편협한 매국 소인들은 알까? 나는 남은 신들의 양식을 곱게 빻아 가루를 만들어 양손에 고이 담아 높이 쳐들었다. 때마침 불어온 강풍이 가루를 온 세계에 운반해갔다. 아무래도 꿈인 게 분명한 이 악몽은 좀처럼 깰 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