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로더릭과 패멀라 남매는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내려간다. 운명 같은 집을 만났기 때문이다. 바로 ‘클리프 엔드’. 이 집에서 로더릭은 책 집필에 전념할 예정이고, 패멀라는 6년간 아버지를 병간호하느라 포기했던 일상을 되찾을 생각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제목은 ‘초대받지 못한 자’이고, 아니나 다를까 기이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귀신 들린 집 이야기’의 전형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면서도 특유의 개성을 놓치지 않는다. 묘하게 낙관적인 분위기랄까. 아니,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소설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 물론 유령은 등장한다.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한 원한을 가진 유령이다. 그는 사람들을 위협하고, 집에서 몰아내려 하며, 인간의 나약한 마음을 학대한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보면 이 유령은 로더릭과 패멀라 남매에게 별로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건 결말이 예상된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유령이 아무리 사악하게 굴어도 이 남매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를 도저히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특히 패멀라가 그랬다. 그녀는 당차고 호기심이 많으며 처음 만난 이와 쉽게 친구를 맺는 유형의 사람이다. 불의의 상황에 뜨겁게 분노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게다가 어떤 진상을 밝히는 데 정말로 진심이다. 유령 입장에서 패멀라는 상당히 귀찮은 존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악의와 원한, 저주에 아랑곳하지 않고 집안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며 ‘진실’을 향해 질주하니 말이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클리프 엔드’는 패멀라의 집이고, 이곳에 초대를 받지 못한 건 유령이지 그녀가 아니니까. 그래도, 유령은 유령이다. 그는 패멀라를 집어삼키지는 못하지만, 스텔라를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한다. 패멀라의 새로운 친구, ‘클리프 엔드’의 옛 주인, 가문에 종속된 힘없는 여자아이. 스텔라는 패멀라와 달리 유령에게 끝없이 휘둘린다. 이 소설에서 진짜 무서운 지점이 있다면 바로 여기일 것이다. 스텔라는 패멀라와 다르다. 스텔라는 ‘클리프 엔드’ 의 비극적인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그 슬픔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랑을 갈구한다. 노력한다. 애를 쓴다. ‘클리프 엔드’를 기웃거리고, 유령을 만나고 싶어 하고, 그의 마음을 느끼기를 원한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앙상하게 말라가고 헛소리를 하고, 계속 그리워한다. 실체 없는 마음을 얻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인정할 생각이 없는 상대를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 허망한 것은 없다. 때문에 이런 마음은 결국 비극을 초래한다. 바로, 나를 진짜 사랑하는 존재를 몰라보게 하는 것. 스텔라는 그 모든 일들을 겪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패멀라가 위험을 감수하고도 집 안을 돌아다녔던 건, 이런 스텔라를 지켜보는 일이 안타까웠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 역시 병든 아버지를 돌보며 세월을 보냈던 사람이기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기에 스텔라를 이해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인지 내게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유령을 내쫓는 장면이 아니라 유령의 정체가 밝혀지는 부분이었다. 스텔라가 정신을 차리는 장면 말이다. 자신이 갈구했던 사랑이 헛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 그리고 유령은 집에서 내쫓긴다.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다 읽고도 한참 동안이나 끝이 났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새로운 이야기 가 시작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로 그런 상상을 한다. ‘클리프 엔드’의 비극은 낱낱이 밝혀졌고, 스텔라는 더 이상 가족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녀에게는 패멀라와 로더릭이라는 친구가 생겼다. 이 낙관적인 남매는 스텔라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닐 것이다. 즐거운 일, 신나는 일을 함께할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세 사람은 운명 같은 집을 만난다. 놀랍게도 그 집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러나 세 사람 중 누구도 물러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대받지 못한 자’는 그 집에 음침하게 숨어 있는 존재이지 로더릭과 패멀라, 그리고 무엇보다, 스텔라가 아니니까. |